요즘 서울의 봄 영화가 한창 붐인거 같은데 천만 간다는 얘기가 파다하네요. 서울의 봄 보러 가고 싶다. 재미 있다? 아니 열받는다고 하던데. 암턴, 네이버 영화에서 누적 관객수 확인을 해보니 현재 1위 755만명이네요. 곧 천만 달성 할듯합니다.
12월 12일 즉 1212 군사 반란에 대한 영화라고 하던데 1212 사태는 얘기만 들었지 자세한 내막은 들어본적이 없어서 이영화를 보면 잘 이해가 될꺼 같다. 열받는다고 하던데 그래서 심박수 측정하는 챌린지도 한다고 하던데 얼마나 열받으면 그런 챌린지 까지 할까?
시간 되면 아니 시간 내서라고 꼭 한번 보러 가고 싶다.
네이버에서 소개된 내역은 아래와 같았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 발생 그날,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이후,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도 잠시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 내 사조직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인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의 반란군과 이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비롯한 진압군 사이, 일촉즉발의 9시간이 흘러가는데… 목숨을 건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 오늘 밤, 대한민국 수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펼쳐진다!
나무위키에서 해당 영화에 대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았다. 역시 나무 위키
1979년 10월 26일 밤, 국무위원 및 정부 고위관계자, 수도권 및 전방 군부대의 지휘 책임자들이 모두 육군본부로 소집된다. 소집 대상자이자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인 이태신 소장 역시 어리둥절해하며 육본에 도착한다. 이 소장은 육군 헌병감 김준엽 준장과 인사를 나누며 무슨 일인지 묻지만, 김준엽은 물론 육본에 있는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한다. 잠시 후, B-2 벙커에서 최한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하고 일시 묵념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한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27일 새벽 4시, 비상국무회의 의결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정 대장은 계엄법에 따라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해 대통령 시해 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전두광은 합수부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대통령 시해범 김동규 중앙정보부장을 향해 '세상은 아직 그대로'라며 조롱조로 빈정댄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눈물을 훔치고 있는 전두광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의 손을 움켜쥐는 이태신을 차례로 보여주고 동시에 거리에서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대통령경호실과 중앙정보부가 수장인 대통령의 공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자,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광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를 독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 정부부처 차관들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모아 보고를 하게 하는가 하면, 차관들의 보고 순서를 제멋대로 바꾸도록 지시하고,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9억원을 유용하는 등 온갖 월권행위를 자행한다. 전두광의 이런 막 나가는 행보에 정상호 대장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군인은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정치와는 멀어지라는, 하나회를 겨냥한 경고성 발언을 한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전두광은 회의가 끝난 뒤 정 대장에게 서울을 지키는 육군 최고 요직 중 하나인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직에 그의 친구인 제9보병사단장 노태건 소장을 추천한다.
그러나 도를 점점 넘는 전 소장의 태도에 정 대장은 '인사권은 참모총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일갈하며 이를 거절한다. 이윽고 정 대장은 하나회를 뿌리뽑기로 마음먹게 되고, 국무총리 공관에서 오국상 국방부장관에게 하나회의 핵심 인물인 전두광, 노태건을 각각 동해경비사령부와 제56보병사단으로 좌천시킬 것을 건의한다. 하지만 이에 머뭇거리던 오 장관은 정 대장의 추궁 끝에 하나회에게 뇌물을 받았음을 사실상 실토하며 좌천 건의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저기 퍼져 있는 하나회 군인들의 귀를 통해 이 소식이 전두광에게로 흘러들어간다.
간단히 배울들에 대해서 알아 보니
정우성
1973년 4월 22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사당동(現 동작구 사당동)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찢어지도록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재개발 지역의 판자촌 산동네에서 살았는데, 재개발 지역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았던 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한다.
퇴거조치가 떨어지면 다른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하고 또 마지막까지 남았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귀가했는데 대문이 헐려 나가고, 집 대문이 없는 날은 집벽의 빈틈으로 들어오고, 어떤 날은 집 벽이 헐려서 눈 뜨면 산 아래가 다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유년시절은 학업보다 알바를 많이 했다고 한다. 가난 탓에 배불리 먹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키가 커서 종종 성인으로 취급을 받았고, 이를 깨달은 정우성은 중학교 3학년 때 서문여자고등학교 앞 햄버거 집에서 재수생으로 속이고 알바를 했다.
공부는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 말단직원이라도 될 수 있을까, 하여 경기상업고에 진학하지만 고1 때 자퇴한다.
아예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여러 알바를 계속하였는데, 그 햄버거집은 정우성을 보기 위해 매번 여학생들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10] 햄버거 가게 화장실로 가는 벽면에는 정우성을 연모하는 여학생들의 낙서가 상당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인기였을지 짐작 갈 정도다. 그 바람에 사장이 시급도 올려줬다고 한다.[11]
찢어지는 가난을 겪으면서도 그다지 큰 불행감은 느끼지 못했지만 교사들이 학생 사는 곳과 집안을 따져가면서 차별을 하는 것에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정우성이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런 성장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훗날 단짝이 되는 배우 이정재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커피숍에서 알바하던 시절, 업계 사람에게 캐스팅되어 모델 일을 시작하고 그렇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13]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학업과 연기를 위해 경기상고를 중퇴[14]하고 모델 일과 알바를 겸업하는 중, 오리온의 센스민트 CF를 통해 처음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고,[15]이후 우월한 마스크와 기럭지로 주말 예능에 간간이 모습을 비추기도 하면서[16] 업계에서의 인지도가 상승했다.
1994년 영화 '구미호'를 통해 깜짝 데뷔했다.[17] 이 때의 연기는 자신이 봐도 못 봐주겠다고 할 정도. 만만치 않은 고소영의 발연기까지 겹쳐서 관객은 공포에 떨었다. 서울관객 174,707명으로 흥행은 그다지 하지 못 했다.
뒤를 이어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SBS 미니시리즈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강동준(이병헌, 원작에서는 이강토)의 동생 동석으로 등장, 딱 그 나이와 외모에 맞는 반항적인 모습에 주목받는 신인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땐 최민수가 드라마 '모래시계'로 터프한 이미지를 완전히 구축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로, 최민수의 뒤를 이을 배우로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이정재가 거론되었으나 이정재가 모래시계 이후 방위병으로 입대하는 바람에 바로 정우성으로 이어져 오게 된다. 그러나...
1996년 심은하와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본투킬>이 연기력의 악평과 겹쳐서, 서울관객 132,262명으로 흥행에 대실패한다. 같은 해 드라마 1.5는 멋있기만한 팬시상품의 나열이라는 악평과 시청률이 1.5%가 될 것 같다는 우려를 안고도 초반에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으나 결국 30~40대 주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18] 이후 한동안 드라마 출연을 하지 않았다.
1997년 영화 <모텔선인장>은 평단과 관객의 악평 속에 흥행에 참패했다.
고소영과 1990년대 청소년들의 로망이 된 '비트'와 절친 이정재를 만나게 해 준 '태양은 없다'를 찍으며 오랜만에 흥행에 성공한다.
비트와 관련한 일화로는 1994년 주간만화잡지 영 챔프에 먼저 연재되던 원작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1995년 당시 설문 조사가 있었는데, 주인공 '이 민' 역으로 어느 청춘 스타가 어울리겠냐는 물음에 정우성이 1위를 차지한 것. 2위는 이정재였다. 이후 1996년 크랭크인하면서 주인공은 정우성이 되었다. 영화 '비트'는 1997년 5월에 개봉하여 20여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전국적으로는 100만여 명의 관객 수를기록하며 당시 시점에서는 청춘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다. 극장보다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렌탈 순위에 지속적으로 랭크됐고 19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처럼 1990년대 시절의 10대 남성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자극했다.
1999년 또 다시 고소영과 함께한 영화 '러브'는 서울 관객 145,242명으로 흥행에 참패한다. 다행히 유령은 최민수의 호연에 힘입어 347,965명의 관객으로 선방했다.
황정민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90학번)에 재학 중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1편에서 우미관 지배인 단역으로 데뷔했다.[11]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간간이 단역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1999년 개봉했던 영화 쉬리에서는 후반부에 (장현성과 함께 나와) 한석규를 추궁하는 정부 요원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미리 섭외된 것이 아닌, 촬영 직전에 아는 선배가 황정민에게 전화로 급하게 일감 생겼다고 알려줘서 출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무명 배우로서 힘든 생활을 하던 황정민은 2001년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사실 이 때만 해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다른 주연 배우들보다 특별히 더 인지도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었다.[12] 당시 12만 관객을 기록했는데 저예산 영화로 흥행한 편이었고 평도 좋았다.
그러다가 퀴어 영화인 로드 무비로 영화계와 충무로에 엄청난 인상을 남기며 그 해 신인상이란 신인상은 다 휩쓸었다. 이후 임상수 감독의 문제작인 바람난 가족,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등에서 연이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갔다. 그 결과 마침내 전도연과 함께한 《너는 내 운명》으로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때 수상 소감 발표였던 이른바 '밥상론'은 이후 수많은 곳에서 회자되는 명대사. 한편 수상 소감으로 전도연에게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고마워.'[13]라고 말해서 아내에게 혼났다고. 아내에게는 황정민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영화 배우로서는 원래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두목, 《사생결단》에서 건들거리는 형사 역할 등을 주로 맡았으나 《너는 내 운명》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주연으로 자리매김 하는 동시에 순박한 청년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사생결단》 이후 몇몇 영화에서 흥행 부진을 맛보았으나 《부당거래》, 《댄싱퀸》, 《신세계》 등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키워가더니, 《국제시장》, 《베테랑》 두 편 모두 천만 명 돌파라는 연타석 홈런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충무로 에이스로 탈바꿈하였다. 게다가 《히말라야》에서 750만 명 정도를 추가로 끌어모아 2015년 한해만 해도 3천만 관객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천만배우라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자기에게는 의미없고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평소에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14] 그 이후로도 《검사외전》, 《곡성》까지 대히트치며 2010년대 충무로의 톱클래스 배우자리를 확고하게 지켰다. 대중들 사이에서 믿고보는 황정민이라는 뜻으로 믿보황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
송강호에 앞서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성기노출[15]을 감행한 용자이며, 아수라에서도 엉덩이 노출을 감행하면서 연기를 위해서 어떠한 장면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들을 낳으면서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시나리오가 좋아도 거절한다고 한다.[16]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2012년에는 뮤지컬 어쌔신을 직접 연출하며 연출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2015년 겨울에는 뮤지컬 《오케피》의 주연인 지휘자역 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맡았다.
샘컴퍼니라는 연예 기획사 사장이다. 연예인 육성, 뮤지컬 제작 등을 다 도맡아 하는 듯. 소속 연예인은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의 막내아들로 나왔으며 미생의 장백기 역인 강하늘[현재는], 영화 파수꾼에 희준으로 나오는 박정민[18], 백주희가 있다.
대표적인 CF로는 진짬뽕 광고로 광고 이후 진짬뽕은 신라면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으며 그렇게 새로운 합성소스로 등극하며 2016년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틈틈히 연극을 준비 중이다. 인터뷰에서 "언어의 향연이라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하려고 한다”며 연극 출연 계획을 밝혔다. 이후 약 10년 만에 연극 리처드 3세에 출연해 열연 중 이다.
이렇게 영화, 뮤지컬, 연극, 광고까지 섭렵하면서 최고 흥행 배우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공작으로 누적 관객수 1억 명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여섯 번 째 돌파 기록이며, 주연작만 계산할 경우 송강호, 하정우에 이어 역대 세 번 째 주연작 누적 관객수 1억 돌파 기록이다.
영화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매우 강한 배우 중 하나지만 드라마 출연도 몇 번 했다. 2009년도에 김아중과 함께 찍은 그저 바라보다가는 시청률은 시티홀에 밀려 (당시 기준으로)높게 나온 편은 아니지만 매니아층을 상당히 형성했다. 이후 2012년에 한반도에 출연했지만, 200억을 들인 대작임에도 정말 처참하게 망하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이후에는 다시 영화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2020년 하반기에 허쉬로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했으나 이 쪽 역시 평가도 별로고 시청률 역시 처참한 수준이다. 표본 자체가 적기는 하나 영화 쪽에서의 명성에 비해 드라마에서는 영 힘을 못쓰고 있다.[19] 하지만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 출연하였고 수리남이 좋은평가를 더 많이 받고있어서 드라마에서도 성공가도에 오르는 계기가 될 것 같다.[20]
연기할 때 애드리브가 많은 배우로 알려져있다. 다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현장에서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것이지 실제로 돌발적인 애드리브를 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감독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내용을 공유한 다음에 '애드리브인 것 처럼'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돌발 행동은 작품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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